잠실역 교보문고에서 이 책을 구매했었다. 다른 책을 둘러보다가 올해의 베스트셀러책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어 이 책을 집었었다. 담담하고도 묵묵한 느낌의 글 스타일이 좋았다. 물론, 번역본이었지만.. (번역 김희정)

 

이 책은 타라웨스트오버 지은이 본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모르몬교 부모로 인해 세상과는 단절된 환경에 살면서 받은 교육이라고는 홈스쿨링이 전부인,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는 소녀의 모습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버지는 폐철 처리장을 운영하고 있고, 어머니는 산파이자 이상한 물약(?)을 제조하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자기 자식들에게 끊임없이 자신들이 원하는 자아상을 심어주고 있었고, 받아들이지 않는 아이들에겐 가차없이 가족에서 제명한다. 한국인으로서 보는 내내 이해가 안되는 부모들이었다. 그것도 좋은 자아상도 아니고 이상한 종교에 근거한, 희안한 믿음을 요구하는, 이상한 자아상이었다. 

 

타라웨스트오버는 그 거대한 감옥에서 탈출하려고 발버퉁친다. 감옥, 한 사람의 개인의 정신적 자유 그리고 자아를 가둬두려는 감옥말이다. 여자는 부엌에 쳐박혀 있어야한다는 생각을 가진 아버지를 거역하고 학교에 간다. 그곳에서 자신의 무지를 깨달아 가면서 타라는 점점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그리고 점점 자신의 고향, 정신의 감옥에서 멀어져간다. 그 과정에서 고난이 수반된다. 가족과 떨어져야 한다는 정신적 고립감과 함께 가족을 배신하는 거라는 죄책감, 형제들 중 최악인 친오빠 숀에게서 받은 폭행들로 인해 생긴 정신질환들도 극복해야 했었다. 그러나 그러한 환경에서도 본인의 의지였든 아니였든 타라에게는 끊임없이 배움의 기회가 찾아온다. 타라는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해내며, 결국, 최고지성이라 불리는 박사 학위까지 딴다. 그리고 그녀는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타라가 새로운 자아를 받아 들였기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타라가 배움을 받을 때마다 그녀는 점점 새로운 자아상에 눈을 떴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자아상과 새로운 자아상이 충돌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존재의 근거인 부모들이 만들어준 자아상과 세상속에서 배우며 경험했던 자아상 사이에서 타라는 선택했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 두 자아상은 타라 내면에서 서로 공립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타라는 선택을 했고, 그것은 캠브리지 박사라는 타이틀을 가져다 주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아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였다. 마지막엔 타라는 이것을 교육이라고 부르는 데, 마음 속에 정말 와닿았다. 교육은 그저 머릿속에 지식을 채우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녀는 자아라는 더 넓은 의미로 그 단어를 정의했다. 다시 말하면, 교육이 나 자신의 존재의미를 결정하는 것이다. 

 

책을 모두 읽었을 때, 마음이 너무 편안했다. 글 스타일도 너무 좋았고, 타라가 잘 되서 너무 기뻤다. 그냥, 친구로 같이 지내고 싶은 그런 책이었다. 교육을 통해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는 키워드(물론, 타라 부모는 자신의 딸이 악의 구렁텅이에 빠졌다고 생각하겠지만)는 내가 생각했던 교육이란 단어의 정의 범위를 바꿀 정도로 상당히 강력한 메세지였다. 언젠가 미국에 가게 되면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그 때 쯤엔 어떤 내가 이 책을 읽게 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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